스승과 제자 (주인과 종)

2023. 4. 8. 19:21[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랍비'는 스승이라는 뜻 입니다.

'스승' '랍비'는 같은 의미 입니다.

 

'랍비'는 번역하면 '스승'이라는 말이다.

(요한 1:38)

 

랍비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를 삼는

높은 위치에 있는 분으로,

'랍비' '나의 스승님', '나의 주인님'을 의미합니다.

스승(랍비)은 제자들의 주인 입니다.

 

스승이 랍비이고 랍비가 스승입니다.

 

스승(랍비)은 한 분 뿐 입니다.
곧, 예수님만 제자 삼을 수 있습니다.
가르친다고 스승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마태 23:8)
가르친다고 자신의 제자 삼을 수 없습니다.
'
제자만드는 것' '가르치다'는 구분 되어야 합니다.


모두 형제 입니다.(마태 23:8)
스승은 한 분이신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가르치되 스승이라 불리지 않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스승이 한 분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
갈라 1,11-12)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았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
요한 7:16)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가르침은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신명기 8:3)[개역개정 4]


결국 말씀은 하느님에게서,
'
한 분'에게서 나오고 있습니다.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옵니다.
사도 바오로(바울)가 말씀을 전달하는 매개 역할을 하여
스승으로 임명(가르치는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바오로[바울]이 스승으로 임명된 것은 복음을 위하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티모 2:7])

, 주님의 제자로 삼는 스승으로 임명된 것을 뜻합니다.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스승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
티모테오 1:11)

 

나는 이 증거의 선포자와 사도로,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과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할 뿐,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2
티모 2:7)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
마태 23:8)


사도 바오로(바울)처럼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신 분이라면
사도(어머니)로써 자격이 있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사도 바오로는 참 스승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따르는 스승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마태 16:24)

 

또한 사도 바오로는 '한 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의 스승은 '한 분'입니다.

바오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바오로는 중개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1티모 2:5)

우라가 따라야 할 스승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계시다면
그 분을 따라나설 거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이 더 이롭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떠나시므로
그분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
요한 16: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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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
마태 10:24-25)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마태 10:24-25 - KRV)

 

'같다'라고 번역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처럼으로 번역 하는 것이 맞음.

 

제자는 스승이신 예수님보다 높지 않습니다.
종은 주인이신 예수님보다 높지 않습니다.
제자가 예수님처럼 되고
종이 예수님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다만 스승이라고 불리지 못하고

스승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스승은 한 분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스승처럼 된다

하지만 스승(예수님)보다 높지 못합니다.

곧 스승(예수님)보다 높지 못하는 테두리 안에서

제자가 스승처럼 된다입니다.

곧 스승인 '한 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
마태 23:8)

 

예를 들어,

제자A가 예수님의 제자일 때,

“‘제자A’는 스승이신 예수님 보다 높지 않다.”는 말은 맞는 말 입니다.

 

그리고

제자B가 제자A의 제자일 때,

“’제자B’는 스승이신 제자A보다 높지 않다는 말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C가 제자B의 제자일 때,

“’제자C’는 스승이신 제자B보다 높지 않다는 말은 문제가 있습니다.

 

위의 제자 조직은 마치 다단게 피라미드 조직과 흡사 합니다.

그러므로 스승은 한 분이어야 합니다.

 

주인은 예수님이어야 하고, 스승도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배우고

예수님처럼 되어야 합니다.

 

스승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주인처럼 되는 것'의 말씀은 박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
요한 15:20)

 

주인이 박해를 받았다면, 종도 박해를 받을 것 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
마태 10:22-25)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제자A가 예수님처럼 되기 보다,

제자C가 예수님처럼 되기가 더 어렵워 보입니다.

제자C는 스승이신 제자B보다 높지 않고,

또한, 예수님의 제자인 제자A보다 높지 않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습니다.(루카 14:26, 루카 14:27, 루카 14:33, 요한 13:35)

예수님를 따르는 제자를 다른 스승이 제자로 삼는다?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집주인'으로 표현하시고,

'그 집 식구'를 자신의 제자로 표현 하십니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박해 했다면, '그 집 식구'는 더 심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푸른 나무가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마른나무야 어떻게 되겠느냐?

(루카 23:31)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스승처럼 되는 것' 또한 박해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스승처럼 되는 것'은 무엇보다 ''(eye)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 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
루카 6:39-42)

 

'스승처럼 되는 것'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내는 것입니다.

제대로 본다면 '스승처럼 되는 것'이 인도하는 스승이 된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다만, 목자로서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지옥형 판결을 어떻게 피하려느냐?
그러므로 이제 내가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율법 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면 너희는 그들을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또 이 고을 저 고을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
그리하여 의인 아벨의 피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 닥칠 것이다.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시다(루카 13,34-35)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
마태 23:13-37)

 

그리고 눈이 잘 보인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 입니다.

암탉을 비유로 말씀 하십니다.


바로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시다(마태 23,37-39)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
루카 13:32-35)

 

암탉을 비유로 말씀하시며,

눈이 잘 보인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소? 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하고

그들이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 
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참으로 눈이 먼 사람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
요한 9:24-41)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
마태 15:14)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
마르 10:48-52)

 

제대로 본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볼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스승처럼 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느님 아버지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주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
요한 5:30)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
요한 8:28)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요한 15:5)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 처럼,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
요한 20:21)

 

스승은 자신의 제자로 삼아 인도하지만,

스승이 아닌 목자가 예수님의 양들을 자기 제자로 삼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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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마태 23:11-12)


중요한것은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라고 바오로(바울)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은 누구한테 청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루카 11:13)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1
코린 3:6-7)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은사,
특히 예언할 수 있는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1
코린 14:1)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마태오 11:29-30)


*
아래 구절은 협력자로 검색한 성경 구절들 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협력자들 가운데에서 티모테오와 에라스토스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보내고,

자기는 얼마 동안 아시아에 더 머물렀다.
(
사도 19:2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의 협력자들인 프리스카와 아퀼라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
로마 16:3)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협력자인 우르바노와 내가 사랑하는 스타키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
로마 16:9)


나의 협력자 티모테오, 그리고 나의 동포들인 루키오스와 야손과 소시파테르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
로마 16:21)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
로마 3:9)


티토로 말하면, 그는 내 동지이며 여러분을 위한 나의 협력자입니다.

우리의 이 형제들로 말하면, 그들은 교회들의 대표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2
코린토 8:23)

 

나는 에파프로디토스도 여러분에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나의 형제이고 협력자이며 전우이고 여러분의 대표이며,

내가 곤궁할 때에 나를 도와준 봉사자입니다.
(
필리피 2:25)

 

그렇습니다. 나의 진실한 동지여, 이 여자들을 도와주도록 그대에게도 당부합니다.

이들은 클레멘스를 비롯하여 나의 다른 협력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려고

나와 함께 싸운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이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적혀 있습니다.
(
필리피 4:3)

 

유스투스라고 하는 예수도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할례 받은 이들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나의 협력자는 이들뿐인데, 이들이 나에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
콜로 4:11)

 

우리의 형제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하느님의 협력자인 티모테오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고 여러분의 믿음을 격려하여,
(
데살 3:2)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이 된 나 바오로와 우리 형제 티모테오가 사랑하는 우리의 협력자 

필레몬에게,
(
필레몬 1:1)

 

나의 협력자들인 마르코와 아리스타르코스와 데마스와 루카가 그대에게 인사합니다.
(
필레몬 1:24)

 

그러므로 우리가 그러한 이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3
요한 1:8)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 있게 처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1테살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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